Sonu Jung

새로운 조직에 합류한 김부장 이야기

켄 노튼의 12가지 제언

조직에 새로운 리더십이 이식되는 과정은 언제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동반한다. 특히 화려한 경력을 가진 시니어가 합류할 때, 그들이 조직에 빠르게 안착하여 성장의 기폭제가 될지, 혹은 기존의 질서를 교란하며 문화를 퇴보시킬지는 초기에 판가름 나곤 한다.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분야의 필독서로 꼽히는 전 구글 임원 켄 노튼(Ken Norton)의 에세이 '새로운 조직에 합류한 프로덕트 매니저가 해야 할 12가지 일'은 흔히 주니어들의 온보딩 가이드로 소비되지만, 실은 모든 직급을 관통하는 통찰을 담고 있다.

  • 기대치 조율: CEO 및 매니저와 역할과 목표에 대해 명확히 합의하기
  • 전원과의 1:1: 회의실을 벗어나 산책하며 나누는 대화의 힘
  • 마법의 질문: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당신이 편해질까요?"
  • 병목 해결: 팀원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잡무부터 제거하기
  • 기술적 딥다이브: 엔지니어에게 솔직하게 질문하며 아키텍처 파악하기
  • 관찰과 경청: 성급한 변화 시도보다 신뢰 구축 선행하기
  • 현장 밀착: 영업, CS, 커뮤니티 등 고객의 목소리 직접 청취하기
  • 실무 참여: 작은 버그 수정이나 미니 기능 런칭으로 개발 환경 체득하기
  • 문맥 파악: 과거 OKR과 기획서를 정독하고, 부재 시 직접 문서화하기
  • 자기 객관화: 강점 유지와 약점 보완을 위한 개인 목표 설정하기
  • 환경 최적화: 업무 툴과 뉴스 알림 등 효율적 시스템 구축하기
  • 즐기기!

조급함의 함정과 시니어리티의 두 얼굴

문제는 경력이 쌓일수록 이 당연한 '기본'이 간과된다는 점이다. 고액 연봉과 높은 기대치는 시니어들로 하여금 '학습'과 '공감'의 과정을 생략한 채, 즉각적인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 즉 '조급함'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수많은 조직 변화를 목격하며, 나는 이 조급함이 발현되는 방식에 따라 '좋은 시니어리티'와 '나쁜 시니어리티'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차이는 주로 다음 세 가지 지점에서 드러난다.

1. 예전 동료 영입

리더가 신뢰할 수 있는 과거의 동료를 영입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그 의도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다.

  • 좋은 시니어는 이를 조직의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고 건강한 자극을 주는 '기폭제'로 활용한다. 그들의 최우선 과제는 기존 구성원과 새로운 인재의 화학적 결합이다.
  • 나쁜 시니어는 이를 배타적인 '파벌 형성'의 도구로 삼는다. 기존 구성원과의 소통을 차단하고 특정 집단 내에서만 정보를 공유하는데, 이는 마치 물 위의 기름처럼 조직의 투명성을 저해하고 문화를 오염시킨다.

2. 문제 해결의 태도

어떤 조직이든 누적된 부채(Debt)는 존재한다. 이를 다루는 태도에서 리더의 품격이 결정된다.

  • 좋은 시니어는 문제의 맥락(Context)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쏟는다. 중장기적 관점의 로드맵과 단계적 개선안을 통해 구성원을 설득하며, 파격적인 변화를 제안할 때조차 과거를 맹목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 반면, 나쁜 시니어는 문제의 나열을 자신의 존재감 증명 수단으로 활용한다.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이건 틀렸다"며 비난을 앞세우는 행위는 문제 해결이라기보다, 흡사 강아지가 영역을 표시(Marking)하듯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본능적 행태에 가깝다.

3. 방법론의 이식

시니어의 커리어는 과거의 특정 환경에서 빚어진 결과물이다. 이를 어떻게 이식하느냐가 능력의 척도가 된다.

  • 좋은 시니어는 자신의 성공이 복합적인 변수들의 결합임을 인지한다. 따라서 과거의 도구를 무비판적으로 복제하는 대신, 성공의 이면에 있는 본질적 '원리(Principle)'를 추출하여 현재 조직의 상황에 맞게 재설계한다.
  • 반면, 나쁜 시니어는 상이한 변수를 가진 문제에 동일한 '공식(Formula)'을 대입하려 든다. 조직의 규모, 비즈니스 모델, 문화적 특성을 무시한 맹목적인 복제는 조직의 피로도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증명(Prove)을 넘어 공명(Resonance)으로

결국 진정한 시니어리티는 요란한 '증명'이 아닌, 조직과의 깊은 '공명'을 통해 완성된다.

조직이 쌓아온 유산을 존중하고 그 위에 자신의 전문성을 더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전략적 안목,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우군을 만들어 함께 변화를 도모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스스로를 '구원자'로 착각할 때, 우리는 복잡계의 일면에서 얻은 경험을 만물의 진리인 양 휘두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켄 노튼의 조언 중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이 질문이야말로 겸손과 자신감을 동시에 갖춘, 진짜 시니어가 던져야 할 첫 번째 화두일 것이다.